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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유럽 바로크건축물

2011.07.07 19:47

더로스 조회 수:3468

간략설명 중부 유럽 바로크는 
분류 한식,일식,중식,양식,카페,뷔페,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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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유럽 바로크는 신성로마제국(=독일),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보헤미아(=체코)의 세 지역이 중심지였다. 영국과 비슷한 시기인 1660년경에 늦게 시작했으며 18세기에 후기 바로크와 로코코를 합한 화려한 장식 양식으로 175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과는 다른 제국이 정치적 중심을 이루었으며 넓은 지역에 걸쳐 다민족과 다 국가를 포함하는 포괄성을 보였다.





중부 유럽 바로크와 장식주의


건축적 특징은 기능 유형에 따라 둘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교회 건축으로, 서양건축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장식을 자랑한다. 주로 신성로마제국, 특히 바이에른의 남부 독일에서 나타난 현상인데 종교적 영향이 컸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 가톨릭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고 이를 표현할 장식 양식을 주도했다.







파울 데커(Paul Decker). 이상적인 왕궁. 중부 유럽 왕궁은 바로크 건축을 이끈 양대 축 가운데 하나였는데 프랑스의 베르사유와 달리 축제용 놀이기능이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산 루카 아카데미 유학 뒤 31살의 나이에 합스부르크 황실 건축가로 발탁된 에를라흐는 제국의 권위에 맞는 기념비주의의 모델을 고대 로마 건축에서 찾아 응용했다.







다른 하나는 궁전 건축으로 합스부르크 제국과 독일이 두 중심지였다. 제국의 황제나 바로크 군주가 건축주였기 때문에 이들의 권위를 과시하는 기념비주의를 기본 특징으로 가졌으며 장식을 더해 이를 도왔다. 궁전에서는 축제도 많이 열었기 때문에 놀이 기능을 강화한 자유롭고 경쾌한 구성을 추가 특징으로 가졌다. 궁전에 부속된 정원을 ‘축제의 장’ 개념으로 활용한 ‘정원 궁전’이라는 유형을 탄생시켰다.
바로크의 여러 특징 중 화려한 장식이 전체적 두드러진 것인데 알프스 기슭에서 바이에른을 거쳐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이르는 초원 중심의 자연 환경도 중요한 요소였다. 유럽에서 목가적 낭만성이 두드러진 지역으로 자유 형태와 공예 장식 전통이 강했는데 이것이 17~18세기 상황에 맞게 변모해서 나타난 것이다. 독일어권의 중세 건축에서는 건물을 치장벽토, 프레스코 성화, 공예, 조각 등의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을 구현하는 그릇으로 봤는데  이것이 부활한 것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가운데 자유 형태를 개척한 보로미니와 과리니에게서 중요한 영향을 받아 장식을 돋보이는 바탕 형태로 사용했다.  





피셔 폰 에를라흐와 바로크 절충주의


합스부르크 제국의 오스트리아 바로크를 이끈 건축가는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 1656~1723)였다. 이탈리아의 산루카 아카데미에 유학한 뒤 귀국하자마자 31세의 나이에 곧바로 황실 건축가로 발탁되었다.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은 1683년 빈을 투르크족에게서 해방시키면서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황실은 제국의 건축 인프라를 닦고 국력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많은 사업을 발주했다. 당시 제국 내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로마 유학에서 막 돌아온 에를라흐가 유일했다.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 카를 교회. 바로크 절충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선형과 중앙집중형을 여러 단계에 걸쳐 복합적으로 혼용했다.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 카를 교회. 마데르노의 성 베드로, 미켈란젤로 돔, 파리 앵발리드 돔, 로마 승전기둥 등을 혼용한 바로크 절충주의 건물이다.







에를라흐의 건축은 역사적 종합화에 의한 바로크 절충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유학 시절 로마 유적, 르네상스, 성기 바로크, 후기 바로크 등 다양한 이탈리아 고전주의를 배웠으며 프랑스 바로크도 접했다. 바로크 절충주의를 구현하는 구체적 전략으로 찾아낸 것이 ‘로마제국의 창작적 복원’이었다. 동시대 바로크는 제국다운 특징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대 제국의 선례를 선택했으며 시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직설적으로 차용하지 않고 절충주의를 이용해서 각색한다는 뜻이다. 18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백과전서파의 방법론인 포괄성과 간결성을 적용해서 로마 제국건축을 유형별로 단순화시켜 절충주의 개념으로 혼용하는 것이 구체적 기법이었다.


대표작은 카를 교회(Karlskirche, 1716~18)로 파사드는 바로크 절충주의를 대표한다. 여러 선례를 차용했지만 일정한 각색을 가해 자신만의 특징을 더한 다음 조합하는 방식이었다. 신전 파사드와 돔을 중앙의 기본 요소로 삼고 양 끝에 캄파닐레를 더한 구성은 성 베드로를 모방한 것이었다. 돔과 드럼은 미켈란젤로 유형을 사용했지만 드럼의 맨 윗부분 중앙에 곧추선 타원창과 이것을 감싸는 곡면 장식을 넣었다. 드럼을 유난히 높여 수직성을 강조했으며 돔 자체도 아래쪽 몸통에 비해 컸는데 이것은 타원 중심공간을 강조해서 카를 대제와 합스부르크 제국이 세상의 중심임을 알리는 상징성을 가졌다.


가장 극적인 처리는 중앙 출입구와 캄파닐레 사이에 로마제국의 승전기둥을 세운 것이다. 바로크 건축을 통틀어 승전기둥을 사용한 유일한 예였다. 승전기둥은 시각적, 역사적, 상징적 차원에서 건물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시각적으로는 돔의 양 옆에서 수직선을 만들어 균형을 이루었다. 역사적으로는 절충주의 소재를 다양화시킨 의미를 가졌다. 상징적으로는 카를 6세를 황제에, 궁극적으로는 합스부르크를 로마제국에 비유하는 의미를 가졌다. 이런 승전기둥을 쌍둥이로 사용한 것은 헤라클레스의 완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로마 제국을 능가하겠다는 야심을 표현했다.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 쇤브룬 궁전. 베르사유를 능가하는 축제용 정원 궁전으로 계획되었으나 실제는 대폭 축소되어 지어졌다.








쇤부른 궁전과 벨베데레


합스부르크 제국의 궁전 전축은 독일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더 웅장하고 화려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삼아서 수평 확장이 두드러졌으며 건물 앞뒤로 축제용 정원을 거느리는 ‘정원 궁전’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것을 이끈 것 역시 에를라흐였으며 힐데브란트가 가세했다. 에를라흐의 대표작은 쇤부른 궁전이었다. 처음에는 테라스, 인공폭포, 아케이드, 경사로, 계단, 분수 등이 어우러져 베르사유를 능가하는 대규모로 계획되었다. 베르사유에는 없던 축제 기능을 더한 결과였다. 로마 시대의 포르투나 프리미제니아 신전을 모델로 삼아 중앙에 교회도 세울 계획이었다. 안마당도 전망용 텐트와 화려한 꽃 장식으로 치장한 분수 등을 갖춘 크고 작은 네 개의 영역으로 계획해서 황실 생활의 여유를 한껏 높이고자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제국의 권위와 욕망을 과시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 상 벨베데레. 에를라흐에 맞선 라이벌이었던 힐데브란트는 합스부르크의 수도 빈의 왕궁건축에서 주요작품을 남겼다.






실제는 대폭 축소되었다. 중앙 마당을 에워싸는 세 변에 건물 영역을 하나씩 대응시키는 구성으로 영국 바로크 성채에서 많이 쓰던 것이었다. 양옆 영역은 긴 직사각형 안마당과 ‘ㅁ’자 안마당을 연속으로 갖는 이중 마당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본체는 거대기둥이 전면을 담당했다. 규모가 축소된 대신 거대기둥으로 제국의 위엄을 표시하려는 목적이었다. 기단 위에 올린 40여개가 넘는 거대기둥이 긴 전면을 가득 메우며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반복으로 제국의 위용을 드러냈다. 양옆에서 진입하는 계단이 2층 출입구로 동선을 이끌었다. 대 연회실은 베르사유의 유리의 방을 모방했다.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 하 벨베데레. 다양한 선례를 차용, 구사한 점에서 에를라흐와 유사했으나 이것을 로코코를 포함한 화려한 장식으로 묶은 점에서 에를라흐의 절충주의와 차이가 있었다.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Johann Lucas von Hildebrandt, 1668~1745)는 에를라흐와 함께 합스부르크 바로크 건축을 이끌었다. 에를라흐와 심한 라이벌 관계였으나 12살 어렸기 때문에 건축적 중요성에서는 못 미쳤다. 화려한 장식을 전면에 내세운 점에서 후기 바로크에 로코코를 혼합한 쪽에 가까웠다. 대표작은 주로 궁전에서 나왔다. 빈에만 하 벨베데레(Unter Belvedere, 1707~11), 다운-킨스키 궁전(Daun-Kinsky Stadtpalais, 1713-16), 상 벨베데레(Obere Belvedere, 빈, 1721~25) 등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건축 경향은 여러 기존 어휘를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구사하는 적응력과 다양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국에 어울리는 기념비적 고전주의나 바로크를 대표하는 비정형 자유 형태 같은 특정 경향을 처음부터 정해놓지 않았다. 가능한 한 많은 가용 자원을 동원하여 대지 상황, 프로그램, 건축주의 요구 사항 등을 만족시키는 기능주의적 입장을 견지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건축 어휘를 정확하고 수준 높게 구사했다. 마지막으로 섬세한 장식 디테일을 더해 작품의 품위를 높였다.


축제용 정원 궁전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대지 주변의 여러 방향을 넓게 담당하는 포괄적 평면을 즐겨 사용했다. 로지아, 열주 출입구, 콜로네이드, 곡면, 지붕, 개구부, 신전 박공, 아치, 오더 열 등 상황에 맞춰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면서 주변 정원과의 연계를 높이는 대신 축과 중앙 집중 같은 질서를 주었다. 여러 방향을 담당하는 각 면도 비교적 엄격한 고전 질서를 유지했다. 그 대신 했다. 장식 의존도가 높은 것은 카를로 폰타나에게 배운 후기 바로크의 종합화 경향을 버리고 로코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식은 얕은 돋을새김 형식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특징을 보였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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