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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건축물

영국바로크건축

2011.07.07 19:48

더로스 조회 수: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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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바로크 건축은 르네상스가 늦었던 것만큼 17세기 중반에나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정치적 상황이 인위적으로 탄생시킨 측면이 컸다. 1642년의 청교도혁명과 1649년의 찰스 1세 처형을 거치며 1660년까지 이어진 공화정기 동안 영국 사회는 혼란기를 맞았다. 이후 상황은 바뀌어 크롬웰의 몰락과 찰스 2세의 왕정복고(1660~1714)가 일어났고 스튜어트 왕조와 가톨릭이 부활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건축이 필요해졌다. ‘왕정-가톨릭-토리당’의 연합으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은 영국 건축이 국제 조류에 뒤떨어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당시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달리던 바로크 건축을 자신들의 대표 양식으로 결정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여기에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자국 전통을 더해 영국만의 바로크 양식을 추구했다.


영국 바로크 건축의 시작을 촉발시킨 직접적 사건으로 런던 대화재를 들 수 있다. 1666년 9월 2일 일요일 이른 새벽에 런던 푸딩 레인(Pudding Lane)에서 시작된 화재는 5시간 만에 구 바오로 성당과 300여 채의 집을 태우면서 런던 브리지까지 번졌다. 이후 며칠 동안 계속되면서 시의 사분의 삼, 건물로는 87개의 교구 교회와 13,200여 채의 주택이 소실되었다. 곧바로 렌과 후크 등이 중심이 된 6인 위원회가 결성되어 복원과 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다. 교회 51채를 새로 지으면서 영국 바로크가 시작되었다.





렌과 영국 바로크


교회재건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1670년에 15채의 교회를 짓기 시작했고 1677년에 30여 채가 골격을 드러냈으며 1680년대 중후반경이면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51채의 교회 가운데 45채를 도맡으며 영국 바로크의 문을 연 건축가가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 1632~1723)이었다. 그는 영국 바로크 건축의 전부라 할 정도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영국 바로크의 기초를 닦아 완성시켰으며 두 명의 제자에게 이를 전수했다. 세 명을 합하면 영국 바로크의 9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리스토퍼 렌 경의 시티 교회 평면 유형
  
런던 대화재를 그린 그림






렌은 원래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다. 과학자 렌의 관심은 물체의 정지와 이동 사이의 이분법적 관계에 집중되었다. 렌은 둘을 다른 것으로 보았으며 물체의 본성은 이 가운데 실제 자연력의 지배를 받는 이동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의 주름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생각으로 향후 렌의 동적인 바로크 건축이 탄생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건축은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1650년대 말에는 건축가가 될 전문성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런던 대화재가 났고 교회 45채를 통째로 설계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천재일우였다. 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평소 건축에 대해 가져왔던 생각들을 과감하게 펼치며 주요 작품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 교회들은 ‘시티 교회(City Churches)’ 혹은 ‘런던 교회(London Churches)’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대표작으로 세인트 메리 엣 힐(St. Mary at Hill, 1670~76), 플리트 거리의 세인트 브라이드(St. Bride, Fleet Street, 1670~84),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St. Stephen at Walbrook, 1672~87), 피커딜리의 성 야고보(St. James, Picadilly, 1676~84) 등을 들 수 있다.





시티 교회와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


렌은 한 번에 45채의 교회를 설계하는 부담을 유형학으로 해결했다. 지금은 다소 진부할 수 있는 방법론이지만 유형학의 역사에서 한 개인이 명확한 의식 아래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은 렌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다분히 과학적 방법론을 건축에 접목시킨 결과였다. 유형 분류 기준은 기하형태, 평면 유형, 천장 유형의 셋이었다. 기하형태는 사각형, 정사각형, 팔각형, 원, 타원 등을 사용했다. 평면 유형은 일랑식 바실리카, 삼랑식 바실리카, 홀 교회, 그릭 크로스, 중앙 집중 형 등을 사용했다. 천장 유형은 평천장, 크로스 볼트, 배럴 볼트, 돔 등을 사용했다. 이 셋의 조합으로부터 다양한 공간 유형을 얻어냈다.






크리스토퍼 렌 경. 세인트 메리 엣 힐. '정사각형-그릭 크로스-돔 천장'의 세 가지 유형기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교회이다.
  
크리스토퍼 렌 경.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 과학자였던 렌은 과학정신을 발휘해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펜던티브 돔의 둔탁한 벽체구조를 거부하고 가느다란 기둥이 받치는 접시형 돔을 사용해서 밝은 빛으로 가득찬 신비로운 교회를 지어냈다.






이 기준에 따라 시티 교회의 대표작들을 분류해보면, 세인트 메리 엣 힐은 ‘정사각형-그릭 크로스-돔 천장’, 플리트 거리의 세인트 브라이드는 ‘직사각형-삼랑식 바실리카-배럴 볼트와 크로스 볼트 천장’,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는 ‘직사각형-그릭 크로스-돔 천장과 크로스 볼트 천장’, 피커딜리의 성 야고보는 ‘직사각형-삼랑식 홀 교회-배럴 볼트 천장’의 유형 조합으로 각각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는 유형 분류에 더해 돔과 관련한 렌의 과학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때까지 돔은 펜던티브 방식을 답습하듯 사용해왔다. 비잔틴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발명된 것을 천 년이 지난 시점에도 아무런 의심 없이 유일한 해답으로 당연히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 팔라디오, 베르니니 같은 최고의 대가들도 예외가 없었다. 렌은 달랐다. 관습의 당연함을 의심하는 과학정신이 발동했다. 이 방식은 돔의 무게를 받치는 벽체가 너무 두껍기 때문에 구조적 낭비가 심했으며 공간적으로도 무겁고 답답했다.


의심에 의해 문제점이 드러나자 과학정신을 발휘해서 해결책을 찾았다. 돔을 독립 원형기둥으로 받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수학자이자 역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으로 무장한 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 발상이었다. 실내는 무거운 벽체를 벗어버리고 시원시원하고 경쾌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사이를 밝은 빛이 가득 채웠다. 이탈리아 바로크의 공간 개념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렌은 영국 바로크의 요체를 이탈리아의 가톨릭 부활이나 프랑스의 절대왕정 같은 사회적 권력구조로 보지 않고 과학혁명이라는 새로운 학문과 사상으로 봤다. 따라서 영국의 바로크 건축도 과학정신이 반영된 새로운 모습이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이 건물은 가장 영국다운 바로크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성 바오로 대성당과 영국 바로크의 완성


성 바오로 대성당은 규모나 사회적 의미 등에서 영국 바로크를 대표하는 건물이었다. 당시 영국 사회를 구성하던 권력 주체, 특히 신구교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이를 잘 조절해 타협안을 이끌어낸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와 같은 과학정신이 구현되지 않은 대신 이탈리아 고전주의와 영국 전통을 잘 혼합해내며 순수 예술양식 차원에서 영국 바로크를 대표하는 건물이 되었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로마의 성 베드로와 짝을 이루는 대작이 탄생했다고 기뻐했으며 파리의 앵발리드 돔을 눌렀다고 여기며 민족적 자부심을 느꼈다.


찰스 2세는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고 가톨릭과의 연합을 위해 런던 대화재 때 크게 파손된 성 바오로 대성당을 헐고 새 건물로 짓기로 했다. 렌의 설계안은 ‘그레이트 모델-허가안-최종안’ 등 여러 번의 힘든 수정 과정을 거쳐서 확정되었다. 가톨릭에서는 영국 중세 전통의 라틴 크로스를, 성공회에서는 종교개혁 정신에 맞는 중앙 집중 형을, 찰스 2세는 자신의 전제성을 과시할 권위적 기념비성을 각각 원했다. 건축계에서는 영국 바로크를 대표할 이탈리아 표준 양식을 원했다. 렌 자신은 영국의 정체성을 싣고 싶어 했다.






크리스토퍼 렌 경. 성 바오로 대성당 실내 전경. 가톨릭과 청교도의 상반되는 요구를 수용해서 선형과 중앙집중형을 혼용한 실내공간으로 구성했다.
  
크리스토퍼 렌 경. 성 바오로 대성당. 찰스 2세의 정치적 야망에 부응해 정사각형 비율에 기초한 영국 로마네스크의 거석구조 이미지를 부활시켰다.






이런 여러 요구를 하나로 절충해낸 작품이었다. 평면은 라틴 크로스와 그릭 크로스를 혼합한 절충 형으로 구성했다. 돔의 지름은 34미터나 되었다. 건물 길이는 약 145미터에 이르렀는데 이 수치는 영국 고딕 성당의 전통인 동시에 찰스 2세의 야망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외벽 높이가 34미터에 이르면서 수평선은 단순한 수평선이 아니라 초월적 스케일로 나타났다. 파사드는 성 베드로를 기본 구성으로 삼아 프랑스 바로크와 영국 전통을 혼합했다. 신전 박공을 중앙 출입구로 삼아 오더 고전주의로 위계를 세운 뒤 양옆에 캄파닐레를 세우고 그 뒤로 돔을 돌출시킨 처리는 성 베드로를 차용한 것이었다. 돔을 삼중으로 처리해서 인위적으로 높이를 높인 것은 프랑스 바로크의 수직선 경향을 차용한 것이었다. 돔을 받치는 구조는 월브룩의 성 스테파노의 방식을 기본으로 삼아 측력을 받치는 벽기둥을 보강했다. 돔과 첨탑의 인위적 높이에도 불구하고 파사드의 전체 윤곽은 정사각형 비례를 유지했는데 이것은 영국 로마네스크의 수평선 전통을 수직선과 혼합한 결과였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발행일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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