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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건축물

이탈리아 후기 바로크 건축

2011.07.07 19:48

더로스 조회 수: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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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후기 바로크는 지역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로마로 창작 활동은 크게 쇠퇴한 대신 아카데미즘이 등장한 점에서 일정한 중요성을 유지했다. 다른 하나는 토리노를 중심으로 한 피에몬테 공화국으로 과리니, 주바라, 비토네 3인을 배출하며 후기 바로크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피에몬테 공화국 자체가 17세기말에 국력이 커지면서 로마를 제치고 중요한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문명의 중심이 초기 근대의 이탈리아에서 18세기의 파리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의 성격이 강했다. 일거리가 몰리면서 작품 활동이 활기를 띠었다. 크게 보면 보로미니의 비정형주의에서 중요한 영향을 받았으나 독창적 내용도 새롭게 창조하면서 이탈리아 바로크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지역이었다.





과리니와 피에몬테 후기 바로크의 성립


과리노 과리니(Guarino Guarini, 1624-83)는 피에몬테 후기 바로크의 문을 연 건축가였다. 활동 무대는 넓었지만 성직자, 수학자, 철학자 등을 겸했기 때문에 작품 수는 많지 않았다. 당대에 뛰어난 기하학자로 건축에서도 비정형주의에 기하 작도를 응용했는데 이 점이 보로미니와 연결해주는 중요한 끈이었다. 파도치는 것 같은 곡면 자유형태, 부유(浮游)하는 돔, 수직 구성의 앙천성이 대표적인 특징으로 성 라우렌시오(St. Lorenzo, 1667~79)와 산티시마 신도네 예배당(Cappella di Santissima Sindone, 1667~82)이 대표작이었다.






  
1 과리노 과리니. 성 라우렌시오. 정사각형 윤곽에 기하 조작을 가해 팔엽형으로 만든 평면으로 보로미니의 기하 작도보다 더 복잡해지면서 후기 바로크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2 과리노 과리니. 성 라우렌시오 실내. 보로미니의 자유 곡면을 이어받아 요동치는 벽체로 발전시켰다.







성 라우렌시오의 전체 윤곽은 정사각형의 안쪽 면을 조작해서 만든 팔엽형으로 이루어졌다. 모서리 네 곳에 감실을 파서 오목 면을 만들고 밖으로 기둥을 두 개 세워 볼록 면을 만들었는데 둘을 합하면 작은 타원형이 되었다. 실내에서는 여덟 개의 볼록 면이 타원을 한 바퀴 돌아가며 파도치듯 쿨렁거렸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가 생명 활동을 하는 것 같았으며 공간 켜가 두 겹이 되면서 이런 효과가 배가되었다.


천장은 펜던티브 돔을 기본 골격으로 삼아 변형시켰다. 펜던티브를 외벽보다 안쪽에 위치시켜서 네 모서리에 타원형 공간을 넣을 수 있게 했는데 이런 처리는 실내 공간에 부분 겹 공간을 만들었다. 돔 자체도 이중으로 짰다. 팔엽형의 내벽 위에 1차 돔을 얹었고 그 위에 작은 돔을 2차로 하나 더 올렸다. 아직 본격적으로 높아지지는 않았지만 보로미니 건물에는 없던 새로운 기법이었다. 부유하는 돔을 통해 앙천성을 표현하려는 중세주의였다. 2차 돔의 내 곡면에 사용한 리브가 핵심 어휘였다. 구조 역할을 겸하기 때문에 창 면적을 넓힐 수 있었고 빛을 끌어들여 돔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리브 자체가 중세 건축을 대표하는 어휘이기 때문에 중세주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과리노 과리니. 성 라우렌시오 천장 돔. 아직 본격적인 수직 구성은 나타나지 않지만 비잔틴 돔에 나타났던 탈 물질화가 바로크다운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과리노 과리니. 산티시마 신도네 예배당. 육각형 밑변을 장작 쌓듯 돌려가며 중첩해서 중세 수직성을 표현하고 있다.







산티시마 신도네 예배당은 성 라우렌시오의 부유하는 돔을 발전시켜 완성시킨 작품이었다. 돔 골격 자체가 훨씬 복잡해졌다. 성 라우렌시오의 돔이 2단이었던 데 반해 여기에서는 ‘드럼-내 곡면-랜턴’의 3단으로 높아졌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내 곡면을 6층으로 높였으며 랜턴도 2층 돔으로 짜서 전체 단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내 곡면이 압권이었다. 한 층을 조각 아치 형태의 리브 여섯 개를 이용해서 육각형으로 구성했으며 이런 층이 수직으로 여섯 번 반복되면서 마치 장작을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지그재그로 쌓은 것 같은 역동적 형태가 되었다. 코르토나가 성 루카/성 마르티노에서 비잔틴 건축의 회선형 돔을 사용했던 것을 수직적으로 극단화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투명성이 극대화되면서 부유하는 돔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부유하는 돔을 서방 중세건축의 리브를 응용해서 바로크에 맞게 새롭게 창출한 것이다.





주바라와 장식 아카데미즘


괴리니의 뒤를 이은 것은 필리포 주바라(Filippo Juvarra, 1678-1736)였다. 피에몬테 공화국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Vittorio Amedeo II)의 수석 건축가로 발탁되면서 정치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남겼다. 왕은 토리노를 왕국의 수도로 만들면서 정치적 권위에 걸맞은 건축을 원하게 되었고 주바라를 발탁했다. 주바라는 거장 선례들의 장점들을 취합하여 18세기 초반의 새로운 권력 취향에 맞는 장식 양식을 선보일 기교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성 필립보 네리(Santo Filippo Neri, 토리노, 1717) 등 교회도 많이 남겼지만 팔라초와 왕궁 등 왕실과 권력층의 대저택에서 주요 작품이 나왔다. 수페르가(Superga, 1716~31), 스투피니지 팔라치나(Palazzina di Stupinigi, 1729~35), 마다마 팔라초(Palazzo Madama, 1718~21)가 대표작이었다.






  
필리포 주바라. 수페르가. 이탈리아 바로크에서 프랑스 바로크에 이르는 다양한 선례를 종합한 건물이다.
필리포 주바라. 스투피니지 팔라치나. 대 연회실을 장경주의 개념으로 짠 뒤 로코코와 후기 바로코가 혼합된 화려한 장식으로 채웠다.







주바라 건축의 특징은 장식 아카데미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초기 근대 고전주의를 종합한 뒤 장식으로 각색한다는 의미이다. 수페르가는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돔, 팔라디오의 빌라, 비뇰라의 일 제수 실내 벽체,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 캄파닐레,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라 콰트로 폰타네 실내 벽체, 코르토나의 분리형 기둥 등 여러 고전주의 선례를 하나로 종합했다. 과리니의 영향도 커서 곡면 자유 형태, 장식 어휘, 구조 축조성에 비해 과장된 공간 등을 빌려 썼다. 과도한 종합화인데 주바라는 탄탄한 고전주의 기본기와 균형 잡힌 조형감각으로 자신만의 장식주의를 창출했다.


주바라 건축의 절정은 스투피니지 팔라치나 실내로,네 새로운 권력 주체로 등장한 귀족들의 연회를 위한 무대 개념으로 처리했다. 장경주의를 18세기 상황에 맞게 확장, 변형한 것이었다. 귀족들의 살롱 문화에서 탄생한 로코코의 장식 어휘는 이런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실내는 빈 여백 하나 없이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찼다. 이 건물은 아메데오 2세가 사냥을 나왔을 때 머물며 연회를 베풀고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왕은 주바라에게 알프스 이북 강대국들에 뒤지지 않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요구했다.





비토네 - 기하 파노라마와 유형 분류


베르나르도 안토니오 비토네(Bernardo Antonio Vittone, 1702~70)는 토리노 토박이로 피에몬테 후기 바로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는 토리노의 과리니 건물들을 보고 자랐으며 1731년까지 토리노에서 주바라에게 건축을 배웠다. 이후 로마로 유학을 떠나 산 루카 아카데미에서 1733년까지 수학하며 로마 고전주의를 익혔다. 귀향한 후 평생 30여 채가 넘는 교회를 설계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비토네가 활동했던 시기는 18세기 중반으로 이미 계몽주의가 무르익고 있던 때였다. 이런 때에 철 지난 장식 양식을 구사하는 한계를 넘기 위해 선례의 종합화를 창작 전략으로 삼았으며 구체적 경향에서는 선례의 고전적 순도보다는 레퍼토리의 확장을 꾀했다.






  
베르나르도 안토니오 비토네. 성모 방문 예배당. 뒤늦은 종합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비토네의 유형학적 접근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베르나르도 안토니오 비토네. 브라의 산타 키아라. 사엽형 평면에 복층 돔을 적용했다.







건축 어휘는 더 장식적이고 화려해졌으며 기괴해지기까지 했다. 비토네의 고전주의 목록에는 뱃부리 장식 기둥(rostral column), 오벨리스크, 개선 아치, 무덤 등 고대 바로크의 선례들이 포함되었다. 레퍼토리 확장이 창작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형별 분류법을 도입했다. 기능 유형이나 공간 유형에 따라 분류해서 사용했으며 여기에 스스로의 창작을 가해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를 구사했다. 기하 파노라마 개념에 기초한 교회 평면, 몸통, 천장 돔의 유형 분류는 좋은 예이다.


빌라노토(Vilanotto)의 성모 방문 예배당((Cappella della Visitazione, 1738)의 평면은 육각형을 기본 기하형태로 삼아 주변에 작은 타원 예배당이 돌아가면서 에워싸는 구성을 했다. 돔은 리브 네트워크를 기본 구조로 삼아 3중 윤곽으로 처리했다. 첫 번째 윤곽은 여섯 개의 아치가 만나면서 만드는 큰 육각형, 두 번째 윤곽은 큰 육각형 안에 만든 별 모양 돔, 세 번째 윤곽은 두 윤곽을 가장 밖에서 감싸는 육각형 외벽이었다. 천장에는 복합 골격이 만들어졌다. 과리니의 부유하는 돔을 더 발전시킨 기하 파노라마였다. 천장은 천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신비주의의 대표적 예가 되었다.


브라(Bra)의 산타 키아라(Santa Chiara, 1742)의 평면은 사엽형으로 구성했다. 꽃잎이 펼쳐나가는 네 모서리에는 두꺼운 사각 벽기둥을 세워 중심 공간을 형성했다. 네 꽃잎에는 예배당을 할당했는데 타원형으로 평면 윤곽을 형성하고 실내는 갤러리를 갖는 2층으로 처리했다. 돔은 평면 윤곽에 따라 복수 개로 만들었다. 중심 공간 위에는 돔형 볼트로 천장을 마감했고 정상에는 원형 창을 뚫었다. 이 밖으로 예배당 하나당 돔을 하나씩 더 두어 두 번째 켜를 만들었다. 두 번째 돔은 예배당의 갤러리 천장에 해당되었고 역시 정상에 원형 창을 뚫었다. 실내 전체로 보면 다섯 개의 광원이 두 단으로 나뉘어 위계를 이루며 실내 공간의 복층 구도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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