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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건축물

전성기 바로크 건축

2011.07.07 19:49

더로스 조회 수: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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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바로크는 1640~70년 사이에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이끌었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는 서양 예술사 전체를 통틀어 미켈란젤로와 함께 시각 예술의 전 분야에 정통한 천재였다. 조각을 기반으로 한 점과 장수 하면서 여러 명의 교황을 후원자로 둔 점도 같았다. 10대 초반에 조각 실력을 인정받아 교황청 공방에 들어간 이래 평생 동안 교황청 대표 예술가로 승승장구하며 평탄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스스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신학자로 그의 예술은 중세 때 장인이 그랬던 것처럼 창작 행위보다는 구도 행위에 가까웠다.





베르니니의 장경주의와 바로크 기독교 고전주의


제도권 안의 모범생답게 베르니니의 건축은 고전주의의 표준 문법을 잘 지키며 브라만테에서 비뇰라를 거쳐 내려오던 로마 정통 고전주의의 족보를 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건축은 역동적 창조력은 떨어진다. 그러나 종합 예술을 바탕으로 장경주의라는 자신만의 기법을 창출해서 바로크 기독교 고전주의의 한 유형을 완성시켰다. 그는 당시 기독교 건축이 매너리즘에 오염되었다고 보고 이것을 로마 기독교의 기본정신으로 되돌리는 일을 종교적 예술적 의무로 삼았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코르나로 예배당. 예배당은 '성 테레사의 환희'라는 특별한 기독교적 체험을 드러내는 극장 무대로 정의된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코르나로 예배당 측면. 추기경들은 오페라 하우스의 개인 좌석에서 무대를 감상하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가톨릭 정신의 승리와 하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일이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조각, 공예, 회화 등 여러 장르를 동원해 흥겹고 극적인 종교적 장면을 연출했다. 감상효과를 높이기 위해 극장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처리했는데 건축은 이런 무대 윤곽을 형성하면서 내용물을 담는 최종 그릇의 역할을 했다. 라이몬디 예배당(Cappella Raimondi, 로마 1640~47)을 거쳐 코르나로 예배당(Cappella Cornaro, 로마, 1647~51)에서 가장 완성도 높게 나타났다.


코르나로 예배당은 아빌라의 성 테레사(St. Teresa of Avila)에게 봉헌한 작품으로 제단, 감실, 측벽으로 구성되었다. 제단은 벽면 앞에 두 단의 데크를 펼쳐 놓은 것처럼 처리했고 감실은 그 뒤로 타원형 공간을 파서 만들었다. 감실에는 베르니니의 조각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성 테레사의 환희]를 놓았다. 측벽에는 높은 돋을새김으로 새긴 코르나로 가문 추기경들의 조각상을 더했다. 이런 구성은 장경주의를 지향한다. 전체 구성은 극장을 축소해 놓은 것으로 제단은 객석에, 감실은 무대에, 측벽은 오페라 하우스의 개인용 작은 방에 각각 해당된다. 추기경 조각상은 관객이 되어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감실은 무언가 특별한 행사가 벌어지는 별도의 독립 공간인 극장의 무대가 되었다. 특별한 행사는 ‘성 테레사의 환희’였다.




산 피에트로 광장


교황청 예술단의 핵심 멤버로 진입한 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의 마무리 작업을 책임졌다. 교황이 바뀌는 데 따라 부침이 있긴 했지만 1624년에서 1660년대 말에 이르는 긴 기간에 걸쳐 크고 작은 마무리 작업을 지속적으로 담당하며 교황청의 총 본산을 최종 완공시켰다. 브라만테가 1500년대 초반에 초안을 낸 이래 10여명의 건축가를 거치며 150여년을 끌어온 대역사였다. 이 가운데 베르니니의 대표작은 닫집(Baldachin, 1624~33)과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di San Pietro, 1656~67)이었다.





  
1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산피에트로 광장. 바티칸 교황청의 총 본산인 성 베드로의 150년 대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다.
2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산피에트로 광장. 328개의 거대 기둥 숲이 타원 윤곽을 감싸면서 기독교 영웅주의를 창출했다.






산 피에트로 광장은 교황 알렉산드로 7세가 활발하게 벌인 로마 재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성 베드로 앞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광장을 만드는 계획으로 이전부터 입안되었다가 중단된 것을 추진한 것이었다. 타원과 거대 기둥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타원은 바로크를 대표하던 도형이라는 시대적 상징성이 있었다. 이것을 옆으로 누운 안정적 구도로 사용함으로써 정통 고전주의의 건축 분위기와 어울리게 했다. 산탄젤로 다리에서 시작해서 성당으로 진입하는 긴 동선에서는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쉼표의 역할을 했다.


타원 광장은 가능한 한 많은 군중이 성당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운집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성당에 도움이 되었다. 성당 정면에는 교황이 대중들을 위한 미사를 집행하고 일요일의 성채 강복식 때 모습을 드러내는 성채 강복식 발코니(Benediction Loggia)가 있었는데 옆으로 누운 타원은 발코니와 적절한 거리와 각도를 유지하게 해주었다.


거대 기둥은 타원 윤곽을 따라 광장의 경계를 형성했다. 광장 자체가 내 곡면을 기준으로 195미터 x 140미터의 초월적 스케일이었으며 이 윤곽을 모두 328개의 기둥 숲이 에워쌌다. 이집트와 페르시아 건축에서 추구하던 기둥 숲을 3배 가까이 능가하는 규모와 숫자였다. 인간의 상상력과 척도를 초월한 기둥 숲은 정통 고전 어휘를 사용해서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하며 바로크 기독교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었다. 오더는 도심 속 외부 공간에 가톨릭 신비주의와 기독교 제국의 위용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순한 양식을 사용했다.





보로미니와 비정형주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는 비정형주의를 대표하며 베르니니와 쌍벽을 이루는 건축가였다.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장인으로 건축 경력을 시작했지만 누구 못지않은 천재성을 타고나 창의력 넘치는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베르니니의 보조 건축가를 거쳐 독립한 뒤에는 베르니니와 평생 지독한 라이벌 관계였다. 건축 경향에서도 베르니니의 정통 고전주의 반대편에 서며 바로크 건축의 한 축을 이끌었다. 사회적으로도 평생 비주류에 머물며 여러 면에서 베르니니와 반대되는 삶을 살았고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순주 창작의 관점에서는 가장 바로크다운 건축가였다. 그의 자유로운 비정형주의는 후기 바로크의 과리노 과리니와 중부 유럽 바로크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타원을 곧추 세운 뒤 네 귀퉁이를 밀어서 비정형으로 만들었다.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입면에서도 오목과 볼록이 교차하면서 자유 곡면을 만들고 있다.






보로미니의 비정형주의는 자유형태와 곡면이 갖는 조형적 표현력을 추구했다.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San Quarlo alle Quattro Fontane, 로마, 1634~41/1665~67)가 대표작이었다. 전체 윤곽부터 자유형태로 구성했다. 타원을 기본 형태로 삼긴 했지만 장변에서 단변으로 넘어가는 네 지점을 밀어 넣어 전체 형태가 표주박처럼 되었다. 실내에서 보면 오목 면과 볼록 면이 교대로 나타나면서 물결치는 것 같은 곡면을 만들어냈다.



이런 모습은 유기적 조형력을 통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생명력을 표현했다. 타원을 곧추세워 활성 에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생명력을 강조했다. 타원의 정형적 윤곽을 유지하면서 옆으로 뉘어 안정적으로 사용하던 베르니니와 반대되는 경향이었다.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자유 곡면이 물결치는 것 같은 실내 곡면을 만들고 있다. 가장 바로크다운 장면이다.






실내의 물결치는 곡면은 입면에서 반복했다. 3베이를 모두 오목 면으로 처리했으며 그 사이에 두 개 층을 가로지르는 거대 기둥을 넣었다. 기둥은 미켈란젤로나 팔라디오와 같은 건축적 권위나 조각적 힘을 갖지 못하고 곡면의 분절을 돕는 2차 요소가 되었다. 건물의 주인은 더 이상 고전 오더가 아니라 곡면이었다. 엔타블러쳐도 곡면에 맞춰 곡선 띠로 처리했다. 보로미니는 로마시대 고대 바로크의 대표적 예인 페트라의 카즈네 알-파로운을 이 건물의 선례로 삼았다. 성 수산나를 기본 모티브로 삼아 고대 바로크 기법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조반니 바티스타 몬타노(Giovanni Battista Montano)의 [다양한 고대 신전 모음집(Scielta di varii tempietti antichi), 1624]이 결정적 가이드였다. 고대 바로크의 비정형 선례들을 수록한 책으로 바로크 건축, 특히 비정형주의자들에게 교과서 같은 책이었으며 보로미니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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