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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건축물

초기의 바로크 건축

2011.07.07 19:50

더로스 조회 수: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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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성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의 대립 상황을 타파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양식 발전과정에 따르면 성기 르네상스 다음에 후기 르네상스가 오게 된다. 이것이 통상적인 후기 양식인 ‘과도한 장식이 수반되는 쇠퇴’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시대 상황에 맞춰 또 하나의 새로운 비정형 경향인 바로크로 발전하게 된다. 매너리즘의 선례도 중요한데, 매너리즘의 반(反)고전주의를 이어받되 개별적 일탈과 파격에서 벗어나 바로크 고전주의라는 또 하나의 큰 법칙을 창출해낸 것이다.





가톨릭의 부활과 이탈리아 바로크의 성립


바로크가 형성되어 가던 16세기 후반부 유럽은 역동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반종교개혁과 가톨릭의 부활, 중세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절대왕정의 등장, 천문학의 발전에 따른 ‘시-공간’ 개념의 변화, 욕망과 놀이문화의 유행 등이 바로크 건축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대표적 현상들이었다. 매너리즘 때의 어려운 상황도 계속되고 있었다. 바로크를 관통하는 1560~1660은 ‘철의 세기(iron century)'라 불리며 신-구교 분쟁, 경기 침체, 전쟁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바로크는 이런 시대상황을 예술정신으로 승화시키며 비정형주의를 꽃피운 양식이었다.


가톨릭의 부활은 제일 큰 배경이었다. 이탈리아 바로크는 교황청을 주요 건축주로 삼아 가톨릭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종교적 내용에 부응하는 기독교 건축으로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내용으로 라틴 크로스의 부활을 들 수 있다. ‘가톨릭=라틴 크로스’ 대 ‘신교=그릭 크로스’의 대별구도가 반영된 결과였는데 예수회에서 특히 라틴 크로스를 선호했으며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5~63)에서도 새로운 교회 평면으로 이 유형을 제시했다.


신교의 ‘믿음’이라는 강령에 맞서기 위해 가톨릭은 ‘종교적 열정’을 들고 나왔는데 이를 고취시키기 위해 성화, 조각, 공예, 프레스코 등의 화려한 기독교 미술이 다시 등장했다. 장식이 놓이는 바탕 면을 확보하기 위해 벽체 구조가 전면에 등장했다. 벽체 구조는 이외에도 유동성, 곡면, 오목-볼록, 타원, 자유형태 등의 비정형주의와 잘 맞았으며 바로크의 투시도 개념인 착시, 강조, 변형을 통한 뒤틀린 공간과 복합공간을 만들기에 기둥 구조보다 유리했다. 바로크 기하주의에서는 삼각형이나 타원처럼 자극성이 강한 도형을 기본 형태로 사용했는데 여기에도 벽체 구조가 제일 잘 맞았다.





비뇰라와 로마 스쿨


바로크 건축의 문을 연 것은 쟈코모 바로치 다비뇰라(Giacomo Barozzi da Vignola, 1507~73)였다. 로마 대 약탈 이후 모두 힘들어진 로마를 떠난 데 반해 교황청 공방을 지키며 정통 로마 고전주의의 족보를 지켰다. 바로크 건축을 이끌어갈 많은 제자를 길러내 로마 스쿨을 이루었다. 로마 일 제수 평면(Il Gesu, 1568~73)에서 라틴 크로스를 부활시켜 바로크 교회 평면으로 정착시켰고 줄리아 빌라(Villa Giulia, 1550~55)에서는 연속 공간과 장경주의라는 새로운 공간 기법을 선보였다.








쟈코모 바로치 다비뇰라. 일 제수 실내. 가톨릭의 부활에 따른 바로크 선형 교회의 시작을 알린 건물이며 르네상스 기둥 구조에서 로마 벽체 구조로 전환도 있었다.






일 제수는 예수회의 총 본산이었기 때문에 가톨릭의 상징성이 강하게 요구되었다. 미켈란젤로가 시작했다가 중단한 것을 비뇰라가 이어받아 평면과 실내를 완성시켰는데 신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로마 기독교의 원형으로 돌아간 것이 핵심이었다. 트랜셉트 없는 3랑식 바실리카로 전체 구성을 짰다. 알베르티의 성 안드레아가 가까운 선례였지만 알베르티가 선형 구성을 약화시킨 것과 달리 바실리카 원형을 지키며 세 개의 선형 축을 드러냈다. 실내 공간 골격은 로마 고전주의의 벽체 구조로 짰다. 극기주의를 내건 예수회의 강령에 따라 실내는 회반죽으로 검소하게 처리했다.


지금의 장식은 비뇰라 사후인 17세기 후반부에 더한 것이다. 장식은 없었지만 건축 처리에서는 중세 기법을 도입했다. 천장 채광을 강조해서 초대교회에서 중세교회에 이르는 가톨릭 건축의 상징성을 살렸다. 천장에 루넷을 뚫어 빛을 끌어들여서 석재 구조인 볼트를 돌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탈 물질을 가했다. 돔에도 드럼에 창을 뚫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강조했다. 이런 처리들은 나중에 더한 장식과도 잘 어울리면서 실내에 신비주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쟈코모 바로치 다비뇰라. 줄리아 빌라. 대칭과 비례를 좇던 르네상스
빌라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실내 구성과 이것들의 연속공간으로
이루어지는 바로크 공간의 시작을 알린 건물이다.
쟈코모 바로치 다비뇰라. 줄리아 빌라 내 님피움.






줄리아 빌라(Villa Giulia, 1550~55)가 대표적 예이다. 100미터에 가까운 길이를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눈 뒤 이것들의 연속적 합으로 전체 구성을 짰다. 각 영역은 고유한 특징을 가지면서 연속성의 의미를 결정했다. 실내 기능을 계단, 각 실, 전실, 로지아, 복도, 열주 복도, 님피움(nymphaeum), 안마당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이것을 이루는 기하형태는 원과 사각형의 크기를 달리하며 다양하게 사용했다. 평면은 건축도면이기보다 기하 작도에 가까웠다. 동선도 일직선, 돌아가기, 멈추기, 숨기기, 트이기, 틀기, 높낮이 차이, 실내외 교대 등으로 다양했다. 르네상스 빌라와 완전히 달라진 구성이었다.





포르타와 마데르노


비뇰라는 일 제수의 입면 디자인에서는 결정권자였던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새로운 요구를 알아차린 비뇰라의 제자 자코모 델라 포르타(Giacomo della Porta, 1532~1602)가 이에 잘 부응해 입면을 담당했다. 포르타는 대표 업적이 창작물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유작을 사후에 제일 많이 완공시킨 데 있는 특이한 건축가였다. 하지만 일 제수 입면(1571~84)은 기존의 르네상스 구성을 완전히 뒤집으며 ‘일 제수 모티브’라는 바로크 교회의 표준 유형을 제시한 작품이었다.


두 가지가 바로크의 문을 연 새로운 점이었다. 하나는 오더의 위계를 이용해서 중앙부를 강조한 점이다. 베이를 분할하는 오더가 중앙으로 올수록 위계가 높아졌다. 모서리는 사각 벽기둥 2개, 측면 2베이를 구획하는 지점은 사각 벽기둥 3개, 측면과 중앙 출입구를 구획하는 지점은 사각 벽기둥 하나와 반원형 벽기둥 하나로 각각 처리했다. 장식도 중앙으로 올수록 커지고 돌출도 심해서 중앙부 강조를 도왔다. 이런 처리는 출입구를 강조한 것이며 이는 결국 교회 실내라는 성(聖)의 세계로의 유입을 강조한 것이다. 속에 대한 성의 우위를 상징함으로써 가톨릭의 건재함을 온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기독교적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 일 제수 입면. 오더의 위계 차이를 이용해서 성의 공간으로의 유입이 일어나는 중앙부를 강조했다.






다른 하나는 오더를 이용해서 조각적 힘과 가소성(可塑性)을 표현한 점이다. 2층 양옆의 소용돌이 문양이 좋은 예이다. 네이브 천장이 아일보다 높은 실내 구성을 입면에 반영하기 위해 소용돌이 문양을 조각해서 막은 것인데 돌을 불에 구워 만든 도자기처럼 처리하는 조각 솜씨를 선보였다. 돌에 대한 기본 태도가 르네상스 때 축조에 충실했던 것에서 벗어나 조각적이고 탄력적으로 응용하는 쪽으로 바뀐 바로크의 예술관을 보여준다.


카를로 마데르노 (Carlo Maderno, 1556년경~1629)는 포르타의 일 제수 모티브를 이어받아 여러 곳에 응용했다. 성 수산나 입면(Santa Susanna, 로마, 1593~1603)은 언뜻 보면 일 제수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했는데 좀 더 바로크다워진 점이 차이점이었다. 수직성이 강화되어서 1.35의 수직 비례로 변하면서 중세 느낌이 나타났는데 이는 바로크에 내재된 중세주의가 발현된 것이다. 건축 부재와 조각 장식의 음영이 깊어지면서 건물의 인상이 더 강해진 점도 바로크다움을 강조한 점이다.





  
카를로 마데르노. 산타 수산나. 일 제수 모티브를 빌려쓰되 수직 비례로 바꾸고
음영을 더 짙게 만들어 바로크 표준 유형으로 정착시켰다.
카를로 마데르노. 성 베드로 입면. 일 제수 모티브를 사용하긴 했지만 짜임새가 떨어져 종교적 중요성에 못 미친다.






바티칸 교황청인 성 베드로 입면(1607~12)도 일 제수 모티브를 사용했다. 교황 바오로 5세는 그릭 크로스의 중앙 집중 형으로 끝나있던 미켈란젤로의 돔을 확장하고 입면을 새로 짓는 일을 진행했다. 종교적으로는 중요한 건물이었지만 작품성은 못 미쳤다. 오더의 위계 차이를 이용해서 중앙을 강조하려 했지만 비례가 너무 넓적해서 그 효과가 반감했다. 양 끝에 캄파닐레를 세우기 위해 기단을 하나씩 더했는데 지반이 약해서 못 세우게 되면서 수평 방향으로 길어져 버린 것이다. 일 제수 모티브는 얕은 사각 벽기둥과 반원형 벽기둥 사이의 섬세한 음영 차이를 잘 다루어 짜임새 있는 균형감을 살려야 하는 기법인데 반원형 벽기둥의 개수만 너무 많아지면서 전면에 걸쳐 과식한 것처럼 북적거렸다. 조각물과 장식을 많이 더하고 반원형 벽기둥의 음영이 깊어진 점 등은 르네상스와 달라진 바로크다운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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