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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건축물

미켈란젤로와 팔라디오

2011.07.07 19:51

더로스 조회 수: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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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를 이끈 두 사조인 성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사이의 관계는 16세기 건축가들에게 무거운 과제였다. 대부분 둘 모두를 구사했는데 중간에서 중심잡기가 쉽지 않았다. 둘 모두에 정통하며 최고의 수준으로 구사한 종합형 건축가로 미켈란젤로와 팔라디오를 들 수 있다. 다른 건축가들이 성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가운데 하나를 대표 경향으로 삼고 나머지 하나를 섞은 데 반해 두 사람은 두 사조 모두에서 수작을 남겼다.





미켈란젤로 – 천재적 종합형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oti, 1475~1564)는 르네상스뿐 아니라 서양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회화, 조각, 건축 등 시각예술의 전 분야에서 천재적 소질을 타고나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거장이었다. 조각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이를 바탕으로 건축에서도 묵직한 정통 고전주의와 기발한 착상의 매너리즘을 골고루 구사했다. 천재적 소질을 개인의 유희로 끝내지 않고 시대에 대한 고민으로 승화시키는 웅변적 섬세함이 있었다. 기본 유형이나 총체적 문법을 세우는 것 같은 체계적 접근은 하지 않은 대신 기존의 유형과 문법 가운데 한 가지를 잡아 패러디를 가함으로써 시대 상황에 대해 집중도 높은 예술적 대응을 추구했다.


그는 대가답지 않게 겸손한 편이었다. 작품을 의뢰받으면 처음에는 능력이 없다며 고사했지만 일단 시작하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걸작을 남겼다. 명성에 비해 건축가로서 생전의 작품 활동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 번에 끝난 작품은 거의 없었으며 중단되었다 다시 시작하기 일쑤였고 많은 수가 미완성으로 남아 유작으로 완공되었다. 정식 건축가가 아니어서 도면을 남기지 않은 대신 스케치로 기본 아이디어를 잡고 현장에서 직접 말로 지시하고 다듬어서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 때문에 사후 완공이 힘들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좋은 제자를 남겨 그의 원안에 가깝게 완공될 수 있었다.





라우렌시오 도서관과 캄피돌리오 광장


미켈란젤로의 건축은 피렌체기와 로마기로 나눌 수 있다. 피렌체기에서는 고전 규범에서 일탈하려는 매너리즘 경향을 보이는데 라우렌시오 도서관(1524~34/사후 1571년 완공)이 대표작이다. 줄리오 로마노 같은 노골적인 일탈은 아니었다. 개별 부재는 조각가답게 무겁고 힘 있는 고전주의 표준 어휘이며 전체 구성도 언뜻 보면 고전 문법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천히 뜯어보면 기발한 아이디어로 고전 규범을 깼다. 형상이 온전한 채 구성 법칙에 패러디를 가했기 때문에 매우 은유적이고 교묘한 일탈이었다.






  
라우렌시오 도서관. 미켈란젤로의 피렌체기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건물로 계단과
옆 벽에서 상식을 뒤엎는 반전과 패러디를 통해 그의 천재적 기질을 과시했다.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 개발 배치도. 계단을 통해 타원광장으로 진입는
완급 조절을 통해 광장으로의 유입성을 높였다.






전실과 열람실로 구성되는데 둘을 이어주는 계단에서 역설과 모순어법을 표현했다. 계단은 중앙과 양 측면의 삼분법으로 구성되는데 중앙 계단의 윤곽을 바깥으로 배가 부른 둥근 곡선으로 처리했다. 조각가답게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는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계단의 본래 기능과 모순되는 역설이었다.



전실 벽면에서 시도한 고전문법의 파격은 그의 천재성을 잘 보여준다. 투스칸식 쌍기둥을 벽 속에 가뒀는데 고전문법에는 없던 새로운 처리였다. 기둥은 독립적으로 서 있던지 벽기둥으로 처리하는 것이 표준 문법인데 이를 깬 것이다. 벽 속에 갇힌 채 위에 아무 것도 받치는 것이 없어서 내력 구조부재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붙잡혀 온 거인처럼 진열장에 전시되었다. 밑면에 까치발을 둠으로써 기둥은 오히려 받침을 당하는 피구조 부재로 처지가 뒤바뀌었다. 그러나 정작 까치발도 받치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는 공중에 매달려서 아무 것도 받치는 것이 없는 장식물에 불과했다.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 전경. 광장의 삼면을 정통 고전주의 표피로 감싸서 로마 시내에 르네상스다운 광장을 만들어냈다.





로마기에서는 원형에 충실한 성기 르네상스를 구사했는데 캄피돌리오 광장(1539~64/사후 17세기 완공)과 성 베드로 돔(1547, 1558-64/사후 1590년 포르타에 의해 완공)이 대표작이었다. 캄피돌리오 광장에서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던 광장을 정비하는 일이 핵심이었으며 건물 설계도 따랐다. 중세부터 있던 세나토레 팔라초와 콘세르바토리 팔라초를 개축했으며 누오보 팔라초를 새로 설계했다.


세 채의 팔라초에서는 정통 고전주의를 기본 어휘로 삼아 광장 전체에 통일성과 기념비성을 만들어냈다. 고전주의 세 면이 에워싸면서 광장은 르네상스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고전 어휘는 오더에 중점을 뒀는데 위계를 달리해서 ‘주제-변주’ 개념으로 처리했다. 두 층을 가로지르는 거대 기둥은 코린트식 벽기둥으로, 한 층을 받치는 2차 기둥은 이오니아식 원형기둥으로, 창틀에 사용한 3차 기둥은 이오니아식 원형 벽기둥으로 각각 처리했다. 힘 있는 돌 처리와 디테일이 기념비적 위엄을 만들어냈다.







누오보 팔라초 정면. 힘 있는 거대기둥과 섬세한 디테일이 어울려 로마 정통 고전주의의 정수를 보여준다.





팔라디오 – 농업 이상과 빌라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1508~80)는 16세기 종합 형 건축가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파도바에서 태어나 제일 먼저 조각을 배운 뒤 석공으로 전업했다. 비첸차로 이주해서 평생 이곳을 배경으로 수많은 다작을 남겼다. 석공으로 성공하면서 1540년에는 ‘마에스트로 안드레아, 건축가’라는 직위를 얻으며 석공을 넘어 작품을 남기기 시작했다. 지안 조르조 트리시노와 다니엘 바르바로를 차례대로 건축주 겸 후원자로 두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안가라노 비안키 미키엘 빌라 전경. 농업귀족의 본거지에 맞게 측동을 기능적으로 배치하고 중앙에 주인의 주거를 감시자 개념으로 앉혔다 .


비첸차를 이끌던 귀족들로, 팔라디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팔라디오에게 인문학 공부와 답사 여행을 시키고 지속적으로 일거리를 제공하는 등 전폭적 후원을 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건축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맡겼다. 이런 배경 덕에 팔라디오는 말년인 1570년에 [건축사서 I Quattro Libri dell'Architettura]라는 저서를 남길 수 있었다.



팔라디오는 다작 건축가인데 빌라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건물이었다. 16세기 베네치아 농업귀족의 본거지라는 건축주의 사회적 지위에서 건축적 특징을 찾아냈다. 이들은 세 가지를 주요 조건으로 요구했다. 지위를 과시하고 땅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농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할 기능을 갖추는 것이었다. 농업의 생산기능이 갖는 보편적 권력으로서 농업 이상을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내용이었다.





팔라디오는 신전 파사드를 적극 차용하는 방식으로 앞의 두 조건을 만족시켰다. 고전주의를 탄생시킨 핵심 건물인 신전의 모습을 부여함으로써 이들도 고전적 보편성을 공유할 권위를 갖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고전 신전은 또한 땅에 대한 상징성을 가졌다. 고대 신전이 농업의 융성을 빌던 고대 주거에서 온 것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팔라디오도 이것을 믿었다.





  
1 사레고 빌라 평면도. 안마당을 중심으로 농업 경영에 필요한 여러 기능들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2 에모 카포딜리스트 빌라 전경. 빌라 정면에 신전 파사드를 사용해서 집 주인의 권위를 높였다.






농업 경영의 효율성은 유기적 기능으로 해결했다. 창고, 우마간, 작업실 등의 부속실을 주거 동에 날개 형식으로 덧이고 가운데 넓은 마당을 공유함으로써 수확한 농작물을 손질, 보관, 관리하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이것을 주인이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전체 구성을 축과 대칭 구도로 짜서 정리 기능을 높였을 뿐 아니라 외관에 사용한 신전 파사드와도 짝을 이루었다. 사례고 빌라(베로나, 1565~69년경)와 에모 카포딜리스트 빌라(트레비소, 1560-64년경)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대표작인 로톤다(Rotonda = 카프라 빌라, 비첸차, 1565~71/사후 스카모치에 의해 완공)도 이런 내용을 집대성해서 탄생시킨 대작이었다.







로톤도 전경. 팔라디오 빌라의 집대성이자 서양건축사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많이 모방되는 작품이다.





바실리카와 산 조르조 마조레


공공건물에서는 비첸차의 시민회관(= 바실리카, 1548~80/1617년 사후 완공)이 대표작이었다. 비첸차 최초의 르네상스 건물로 표준 고전주의를 차분하게 구사해서 시민정신을 표현했다. 아치와 오더로 이루어지는 표준 고전 어휘 세트를 이용해서 반복이 주는 조화, 구성미, 율동감 등 고전미학의 정수를 표현했다. 산소비노의 산 마르코 도서관, 브라만테의 성기 르네상스, 로마 시대 유적 등 여러 선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낸 로마 고전주의의 근원적 심미성이었다.





거대기둥의 사용을 피하고 휴먼 스케일을 유지해서 르네상스 시민정신을 뒷받침하던 인본주의 미학을 표현했다. 교회의 대표작은 산 조르조 마조레(베네치아, 1560~80/파사드 1610년 사후 완공)였다. 역시 선례의 종합화가 대표적 특징이었다. 양식사조는 로마 고전주의, 비잔틴, 고딕, 초기 르네상스 등을, 평면은 선형과 중앙 집중 형을, 종교는 가톨릭과 신교를 각각 종합했다.



네이브가 3랑식 3베이여서 선형성이 약한 대신 성소를 ‘크로싱-제단-사제석-완충지대-성가대석-앱스’로 길게 늘여 교회 전체로 보면 아주 긴 선형 공간을 이루었다. 중앙 집중 형은 크로싱의 팬던티브 돔, 종 방향으로 확장된 트랜셉트, 그릭 크로스, 사각형 모듈 등을 사용했다. 두 공간 유형의 혼합은 고딕 평면과 르네상스 평면을 섞은 것인데 종교적으로 보면 대립이 심했던 가톨릭과 신교를 통합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비첸차 시민회관. 산소비노의 베네치아 산마르코 도서관에서 영향을 받아 고전 어휘의 반복의 미학을 통해 르네상스 이상을 표현했다.





  
성 조르조 마조레 정면. 신전 박공을 이용해서 네이브와 아일의 높이 차이를 외관에 반영했다.
성 조르조 마조레 실내 전경. 장식과 성화를 철저히 절제한 간결하고 추상적 실내 분위기는 신교 이상을 상징한다.






실내에서도 동일한 통합이 일어났다. 네이브 월의 2분법은 로마 기독교의 전형적 구성이며 천측창을 로마 목욕탕 창으로 처리한 것과 아케이드의 구조를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를 혼합한 방식으로 처리한 것은 로마의 뿌리를 강조한 것이다. 혹은 고딕의 다발 기둥을 르네상스에 맞게 각색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반면 몰딩, 장식, 성화 등을 절제한 기하학적 단순성과 추상적 분위기는 신교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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