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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건축물

메너리즘과 베네치아

2011.07.07 19:52

더로스 조회 수:3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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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은 일반명사로는 ‘습관적 반복, 상투적인 모방, 진부한 기교’ 등을 일컫는 말로 새로운 창조력이 상실되었다는 부정적 의미가 들어있다. 고유명사가 되면 달라진다. 건축에서 매너리즘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양식을 지칭한다. 고전 법칙을 거부하며 일탈과 변형을 추구한 사조였다. 16세기는 성기 르네상스의 시대였는데 그 옆에 이와 반대되는 또 하나의 사조가 함께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 - 소외와 반항


매너리즘의 특징은 심한 ‘탈 법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용 어휘는 고전주의였지만 문법은 철저히 파괴했다. 고전 어휘만 사용한다고 고전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부재의 크기와 위치, 부재들 사이의 비례와 배열 등 지켜야할 구문 법칙이 많았는데 이것들을 깨트린 것이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까지 매너리즘에 대한 평가는 “잔 기교에 기댄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변질 양식”이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한 창조적 예술기록으로서 또 하나의 새로운 양식이라는 긍정적 평가로 바뀌었다.


매너리즘은 시대 상황의 산물인 측면이 많다. 유럽 역사에서 16세기는 가장 힘든 시기 가운데 하나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유럽 사회는 분열되었다. 유럽의 정신적 종교적 뿌리였던 기독교를 둘러싼 내부 분열이었기 때문에 충격과 부작용은 컸다. 일부 사학자들은 ‘대분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분열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며 종교전쟁을 낳았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심한 ‘소외’를 느끼며 고통을 받았다. 일부 예민한 건축가들은 이런 어려운 시대상황을 작품에 반영해서 일탈과 반항을 추구했는데 이것이 매너리즘이었다.








마시모 알레 콜로네 팔라초. 정통 고전주의의 문법을 파격하면서 매너리즘의 문을 연 건물이다.







페루치와 줄리오 로마노


매너리즘 건축은 발다사레 페루치 (Baldassare Peruzzi, 1481~1536)에서 시작해서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1499~1546)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페루치의 대표작은 1527년의 로마 대 약탈 때 겪었던 힘든 경험을 반영한 마시모 알레 콜로네 팔라초(Palazzo Massimo alle Colonne, 1533~36)였다. 매너리즘의 내용은 문법의 파격과 대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파격은 두 곳에서 일어났다. 1층 기둥은 쌍기둥도 아니고 두 개의 기둥을 병렬시킨 것도 아닌 애매한 간격을 유지했다. 중이층에서는 아래쪽 창을 더 작고 장식적으로 한 반면 위쪽 창은 크고 단순하게 하는 전도를 가했다. 건축 부재들은 고전주의의 조화 강령에서 벗어나 엇박자를 냈다.


대비는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1층의 코르니스가 만드는 여러 겹의 강한 수평선은 기둥의 수직선과, 코르니스의 깊은 음영은 위쪽 본체의 평평한 벽면과, 입면 전체의 물결치는 것 같은 곡면은 코르니스와 기둥의 직선과, 기둥이 급하게 반복되는 1층은 기둥을 하나도 갖지 않는 위쪽 본체와, 장식 처리된 창은 처긴 벽면과 각각 대비되었다. 대비는 긴장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지만 앞의 엇박자를 강조함으로써 매너리즘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했다.







테 팔라초 안마당 전경.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고전주의의 비례와 구성법칙을 철저히 파괴해서 유머와 패러디를 가했다.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1499~1546)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로마에서 태어나 1505년의 이른 나이에 교황청 공방에 라파엘의 조수로 들어가면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다. 라파엘로의 가장 충실한 제자로 그의 건축에 나타났던 매너리즘의 단서들을 완성된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라파엘로가 사망하자 그의 미완성 작품을 물려받아 마무리하는 일을 하다 1524년에 만토바의 페데리코 곤차가 대공의 초청을 받아 근거지를 옮겼다. 처음에는 궁정 화가로 들어갔으나 곧 건물들을 설계해서 대공을 만족시켰다. 이후 만토바에 정착해서 주요 건물들을 설계했고 1526년에는 만토바의 귀족 직위를 획득했다.







테 팔라초 안마당 입면 디테일. 가지런하게 일렬로 이어야 할 트리글리프가 이빨 빠지듯 밑으로 내려 앉았다.





라파엘로도 인정한 현란한 기교의 화가로 스승과 마찬가지로 회화적 천재성을 바탕으로 그림의 배경 장면에서 건축적 실험을 한 뒤 실제 건물에 적용했다. 테 팔라초(1525~34)의 안마당 입면은 매너리즘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일탈이 심한 반(反)고전주의를 보여준다. 기둥 간격은 비례법칙을 벗어나 애매해졌고 벽의 돌나누기는 크기, 형태, 표면처리 등에서 규칙적 축조를 거부하고 분산적으로 처리했다. 프리즈 의 트리글리프는 군데군데 이빨 빠지듯 아래로 내려앉았다. 중앙 출입구는 아치 위에 신전 박공을 얹어 고전 부재의 구성위계 및 구조적 안정성 모두를 해쳤다.







베네치아 르네상스와 산소비노


베네치아는 동방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이탈리아 내에서도 특이한 건축경향을 보이는 지역이었다. 일찍부터 동방의 영향을 받아 장식과 공예의 전통이 강했다. 비잔틴 건축이 서방으로 들어오는 통로여서 성 마르코 같은 화려한 장식건물이 세워졌으며 고딕 시대에는 벽돌 장식이 두드러졌다. 르네상스에 들어와서 비로소 주류 건축에 합류하게 된다. 피렌체의 초기 르네상스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전파된 지역이어서 1460년경이면 초기 르네상스의 지역양식을 대표하는 도시가 된다. 장식 전통과 잘 맞는 기하 장식주의를 공예 경향으로 각색한 특징을 보였다. 피에트로 롬바르도(Pietro Lombardo, 1435년경~1515년)의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1485~89)와 마우로 코두치(Mauro Coducci, 1440년경~1504년)의 산 차카리아(1483~91)가 대표적 예였다.







산마르코 도서관 전경. 맞은편의 총독 궁과 산마르코 교회에 맞서 85미터 길이의 수평선을 드리워 르네상스 이상을 표현했다.






16세기 초반을 넘기면서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종교개혁과 1527년 로마 대 약탈을 겪으면서 로마는 큰 타격을 입고 주춤했다. 교황들은 로마 재건계획을 세웠지만 재원과 정치력 모두에서 욕심만큼 되지 않았다. 성 베드로와 캄피돌리오 정도를 제외하고 로마에는 더 이상 주요 건축물이 세워지지 않았다. 반면 베네치아는 대항해 시기를 거치면서 동방무역의 중심지로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활성 덕에 일거리가 늘면서 로마에 실망한 건축가들이 베네치아로 이주해 왔는데 자코포 산소비노 (Jacopo Sansovino, 1486~1570)가 대표적 예였다.





  
1 터키인의 줄타기(The Flight of the Turks)라는 그림에 등장한 산마르코 광장의 중세 때 전경.
작가미상
2 산마르코 도서관 2층 디테일. 산소비노는 로마에서 배운 정통 고전주의를 바탕으로 그 위에
베네치아의 화려한 장식 전통을 섞어냈다.






미켈란젤로와는 동향이면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조각적 소질을 바탕으로 차분한 북부 이탈리아 고전주의를 창출했으며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재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장본인이었다. 베네치아의 관문이자 얼굴인데 이곳을 르네상스 이상으로 정리해냄으로써 베네치아도 르네상스를 독립적으로 운용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좁고 불규칙하게 남아있던 중세 광장을 ‘ㄱ’자형으로 정리했으며 각 경계부에 자신의 대표작인 산 마르코 도서관(1536~60), 조폐국(1535~47), 로제타(1537~40)를 남겼다.







산마르코 도서관 정면 전경. 아치와 기둥으로 구성되는 표준 고전 어휘가 주는 반복의 미학은 르네상스 이상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산마르코 도서관과 로제타


도서관은 1층에 상가, 2층에 시립도서관이 입주하면서 맞은편의 총독 궁 및 산마르코 교회와 적절한 관계가 필요했다. 높이는 낮은 대신 길이를 85미터까지 늘임으로써 수평적 안정감을 통해 두 건물과 균형을 이루었다. 건축 어휘는 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 조각적 섬세함이 뛰어난 조화를 이루었다. 힘 있는 고전 오더와 풍부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3차원 덩어리 느낌과 깊은 음영은 맞은편의 두 건물과 어깨를 겨루기에 충분했다. 광장의 한쪽 면을 당당히 담당하며 산마르코의 비잔틴과 총독 궁의 고딕에 이어 르네상스를 세 번째 양식으로 더함으로써 광장을 베네치아 건축의 역사 기록장으로 만들었다.





  
로제타 전경. 귀족들의 회합장소이자 산마르코 광장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는
건물에 맞게 로마 시대의 개선 아치 모티브를 사용했다.
로제타 디테일. 붉은 대리석을 이용한 화려한 장식은 개선 아치 모티브의 축제 성격을 돕는다.






로제타는 건축적으로는 로마네스크 시대에 세워진 캄파닐레에 대한 기단 개념으로, 사회적으로는 베네치아 귀족들의 회합장소로 세워졌다. 좀 더 넓게 보면 옆의 도서관을 광장 안쪽으로 마감하는 성격과 광장의 안쪽 관문 성격도 가졌다. 여러 기능이 요구된 것인데 로마 시대의 개선 아치를 사용해서 이를 두루 만족시켰다. 원형기둥을 여덟 개나 돌출시키고 대리석을 주재료로 사용했으며 돋을새김과 조각물이 넘쳐나게 새기는 등 개선 아치의 성격 가운데 장식성을 강조해서 이런 목적에 맞췄다. 이런 처리는 베네치아가 로마 제국의 자리를 물려받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성을 가졌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발행일 2011.05.04






컨텐츠 제공: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    
1420~1500
초기 르네상스
브루넬레스키(1377-1346)

피렌체 고아원(1419~1427)
피렌체 구 성물안치소(1419년경~1429)
피렌체 성 라우렌시오 교회(1419년경-1470년대)
피렌체 파치 채플(1425년경~28년 설계시작~1465년경)
피렌체 성령 교회(1436/사후 완공)
알베르티(1404-1472)

[가족에 관하여, 1441])
리미니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1450년경~1460년경)
[건축십서, 1452]
[회화의 요소, 1452]
피렌체 루첼라이 팔라초(1452~1470년경)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1458~1471)
만토바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1460~1472)
만토바 성 안드레아 성당(1470~1472)
미켈로초(1396-1472)

몬테풀치아노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1437년경)
몬테풀치아노 코무날레 팔라초(1440)
피렌체 메디치 팔라초(1444~1459)
피렌체 산티 시마아눈치아타 성당(1444~?)
롬바르도(1435-1515)

베네치아 산타 마리아 데이미라콜리 성당(1485~1489)
코두치(1440-1504)

베네치아 산 차카리아 성당(1483~1491)
베네치아 산타 마리아 포르모사 성당(1490~1504)
베네치아 산 조반니 크리소스토모 성당(1497~1504)
르네상스의 시작

단테(1265~1321) [신곡](1321)
페트라르카(1304~1374) [칸초니에레](1342년경~)
보카치오(1313~1375)의[데카메론](1352)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파비아 대학 설립(1361)
로마와 아비뇽으로 교회 대분열(1378~1417)
피렌체, 피사 정복(1406)
메디치의 코지모, 피렌체 장악(1434~1464)
토스카넬리, 세계지도 제작(1474)
피렌체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 창립(1474년경)
만토바 곤차가 가문 프란체스코 2세(1466~1519)
메디치 라우렌시오 시대(1478~1492)
프랑스 샤를 8세와 이탈리아 전쟁 시작(1494)
카톨릭 개혁운동(1490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1494)
프랑스 루이 12세, 밀라노 정복(1499)
이탈리아 초·중기 르네상스 문화

조각가 기베르티(1378~1455)
조각가 도나텔로(1386~1466)
화가 마사치오(1401~1428)
화가 프라 안젤리코(1387~1445)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
인문학자 레오나르도 브루니(1370년경~1444)
철학자 마르실리노 피치노(1433~1499)
명나라 시대(1368-1398)

주원장, 명 건국(1368, 태조, 홍무제)
일세일원제․군주독재제 확립(1368)
[대명률] 제정(1373)
[대명일력] 성립(1374)
호유용, 난을 일으키다 죽음(1380)
황제, 독재권 강화(1380), 중서성 폐지(1380)
탕화, 왜구 방어책을 올림(1384)
일본과 국교 단절(1386)
북원 멸함(1391)
연왕 즉위(1402-1424, 성조 영락제)
정화의 총7차 남해 원정(1405-1433)
[영락대전] 완성(1416)
[대명일통지] 편찬(1458)
왕월, 하란산에서 타타르 왕자 격파(1498)
조선 - 세종대왕(1418~1450)
이종무, 대마도 정벌(1419)
조선통보 주조해 통용(1424)
박연, 악률 정리(1425)
압록강변 여진 격퇴(1433) - 4군․6진 설치(1433)
화약무기 비격진천뢰 발명(1435)
자격루 제작(1438)
김시습 [금오신화](1438)
장영실, 측우기 제작(1441)
[용비어천가], [의방유취] 완성(1445)
[훈민정음] 반포(1446)

16세기
성기 르네상스
브라만테(1444-1514)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프레소산사티로(1480년경~1486)
밀라노의 산타마리아델라그라치에 동쪽 성소 개축(1492~?)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성당(1492~-?)
아비아테그라소의 산타마리아나첸테(1497)
로마의 몬토리오의 성 베드로 템피에토(1502년경)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파체(1504)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초안(1505~?)
줄리아노 다상갈로(1445-1516)

포조아카이아노의 메디치 빌라(1480~1497)
프라토의 산타 마리아 델라 카르체리(1481~1491)
안토니오 다상갈로(1453-1534)
몬테풀치아노의 마돈나 디 산비아조(1518~1534)
라파엘로(1483-1520)

로마의 키지 예배당(1512~1513)
로마의 산텔리조 델리 오레피치(1515~사후 완공)
로마의 마다마 빌라(1518~미완성)
미켈란젤로(1475-1564)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1539~64/17세기 완공)
로마의 누오보 팔라초(1546~1564)
로마의 파르네세 팔라초 입면 개축 및 안마당(1546~1549)
로마의 성 베드로 돔 및 본당(1547, 1558-64/사후 1590년 델라포르타에 의해 완공)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계속

교황청, 예수탄생 1500주년 면죄부 판매(1500)
캉브레 동맹(1508)
신성동맹(1511)
마키아벨리 [군주론](1513)
프랑수아 1세, 밀라노 점령(1515)
신성로마제국-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전쟁(1521~1544)
신성로마제국, 로마 대약탈(1527)
메디치가, 피렌체에서 추방(1527)
피렌체공, 신성로마제국에 편입(1530)
만토바 곤차가가 페데리고 2세(1519~1540)
로욜라 등 예수회 창설(1534)
교황청 예수회 공인(1540)
코페르니쿠스,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저술(1525∼1530)
크레피 강화로 이탈리아 전쟁 종식(1544)
이탈리아 성기 르네상스의 문화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라파엘로(1483~1520)
미켈란젤로(1475~1564)
보티첼리(1440~1510)
조반니 벨리니(1497~1535)
티치아노(1477~1564)
명나라

영왕 피살(1520), 타타르, 대동 침입(1520),
양명학 창시(1528)
북경 외성 건설(1544)
왜구, 남경 위협(1555)
주산에서 왜구 격파(1557)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거주 허용(1557)
사천 백련교도의 난(1565)
포르투갈인, 마카오시 건설(1566)
조선
단종(1452∼1455)
수양대군에게 양위(1455-1468, 세조)
세조(1455~1468)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1456)
4군 폐지(1459), 호패법 시행(1459)
예종(1468-1469)
성종(1469∼1494)
[경국대전] 완성(1470), 반포(1474)
창경궁 준공(1484)

16세기
매너리즘
페루치(1481-1536)
로마 파르네시나 팔라초(1505~1511)
로마 마시모 알레 콜로네 팔라초(1533~1536)
안토니오 다상갈로 일조반네(1484-1546)

로마 파르네세 팔라초(1515년경~1546)
페루자 로카 파올리나(1540~1543)
페루자 마르치아 문(1540~1543)
줄리오 로마노(1499-1546)

만토바 테 팔라초(1525~1534)
만토바 줄리오 로마노 하우스(1538~1544)
만토바 총독궁 내 에스티발레와 모스트라 안마당(1538~1539)
만토바 성당(1544~1546)
미켈란젤로(1475-1564)
피렌체 라우렌시오 도서관(1524~34/1571)
알레시(1512-1572)

제노바 스트라다누오바(1547)
제노바 카리냐노의 성모 승천 교회(1540~72/1603년 사후완공)
밀라노 마리노 팔라초(1557~65/19C)
바사리(1511-1574)

[거장 건축가, 화가, 조각가……의 생애](1550)
피렌체의 우피치 팔라초(1560~74/1580)
   명의 문화

명대의 4대 기서 [수호지] (명초)
명대의 4대 기서 [서유기](16세기)
명대의 4대 기서 [금병매](16세기)
명대의 4대 기서 [삼국지연의](17세기)
화가 심주(석전. 1427~1509. 서예)
유학자 호거인(1438-1484), 나흠순(1465~1547)
화가 오위(1459~1508), 양명(1472~1528)
화가 당인(1470~1523), 문징명(1470~1559)
남곡(명곡)의 왕세정(1526~1593)
조선

연산군(1494~1506)
무오사화(1498)
언문교육 중지(1504)
갑자사화(1504)
중종반정(1506)
기묘사화(1519) - 조광조 등 처형
인종(1544~1545)

16세기
베네치아 르네상스
산미켈리(1484-1559)

베로나 카노사 팔라초(1520/1531~1537)
베로나 베빌라쿠아 팔라초(1532년경~)
베로나 누오바 문(1533~1551)
베로나 산 제노 문(1547~1550)
베로나의팔리노문(1548~1559)
산폴로 코르나로 팔라초(1555~1564)
베네치아 산루카의 그리마니 팔라초(1557~59/1561~75)
산소비노(1486-1570)

베네치아 조폐국(1535~1547)
베네치아 산마르코 도서관(1536~1560)
베네치아 로제타(1537~1540)
팔라디오(1508-1580)

비첸차의 티에네 팔라초(1542/46~1551/58)
비첸차의 바실리카(1548~80/1617)
비첸차의 키에리카티 빌라(1548~1554, 1574~1584)
안가라노의 안가라노 비앙키 미키엘 빌라(1548)
마세르의 바르바로 빌라(1549~53년경/1553~58)
베네치아 산조르조 마조레(1560~1580/파사드는 1610년 사후 스카모치에 의해 완공)
트레비소 근교의 에모카포딜리스트 빌라(1560-64년경)
베로나 근교의 빌라 사례고(1565-69년경)
비첸차의 카피타니아토 로지아(1565년경-72)
비첸차 근교의 로톤다(1565/66-71/사후 스카모치에 의해 완공)
[건축사서](1570)
비체차의 포르토브레간체 팔라초(1570년대 후반부/사후에 스카모치에 의해 완공)
베네치아의 일레덴토레(1576/77-80), 마세르의 바르바로 템피에토(1579-80)
비첸차의 올림픽 극장(1580-83년 사후 스카모치에 의해 완공)
   조선

명종(1545-1567)
을사사화(1545, 윤임 등 사사)
대마도와 수호조약 개정(1547) - 정미조약
소수서원 편액 하사(1550) - 사액서원의 시초
명에서 양명학 들어옴(1550)
을묘왜변(1555),
황해도 임꺽정의 난(1559-1562)
퇴계 이황, 도산서원 세움(1560)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루아르 성채

블루아 성채(1515~24)
퐁텐블로 성채(프랑수아1세-앙리4세)
세를리오(1475-1554)

토네르의 앙시르프랑(1546년경)
[건축칠서, 1584]
레스코(1515?-1578)

파리의 카르나발레 호텔(1545년경~1550)
파리의 구 루브르(1546~1578)
들로름(1512-1570)

아네의 아네 성채(1547~1555)
슈농소의 화랑 다리(1556~1559)
[건축제1서, 1567]
뷜랑(1515-1578)

에쿠앙의 에쿠앙 성채(1557년경)
[다섯 종류의 칼럼에 관한 건축론, 1564]
뒤세르 소가문

파리의 쉴리 호텔(1624~29)
[프랑스의 우수 건축물, 1576~79]
파리의 뇌프 다리(1578-/후에 변형)
파리의 라무아뇽 호텔(1584)
기타 프랑스 르네상스

파리의 생 테티엔 뒤 몽(1517~60)
파리의 생 외스타슈(1532~89)
캉의 에스코빌 호텔(1535)
프랑스 왕국

프랑수아 1세(1515~1547)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시작
밀라노 침공- 이탈리아 장인 프랑스 초청(1515)
이탈리아 전쟁- 신성로마제국, 스페인에 패배(1521~1544)
부르타뉴 합병(1532)
칼뱅, 신교로 개정(1533)
칼뱅, 제네바에서 종교개혁(1535)
격문사건으로 신교도 탄압시작(1535)
칼뱅주의 성립(1541)
앙리 2세(1547~1559)
카트린느 드 메디치 왕비로 맞음(1533)
뒤 벨레 [프랑스어 옹호와 장려](1549)
샤토브리앙 칙령으로 신교 금지(1551)
에스파냐와 카토캉브레지화약 - 신교 억압(1559)
위그노 전쟁(1562~1598)
생제르맹 화해 - 위그노 전쟁 일시 휴전(1570)
성 바르톨로메오 대학살 - 위그노 전쟁 재개(1572)
앙리 3세(1574~1589)

푸아티에 칙령으로 종교자유 인정(1577)
몽테뉴(1533~1592)의 [수상록] (1580)
앙리 3세 암살(1585~1589)
앙리 4세(1589~1610)

부르봉 왕조(1589~1848)의 시작
국교로 가톨릭 인정(1593)
낭트칙령 - 위그노 전쟁 종결(1598)
앙리 4세, 가톨릭 교도에게 암살됨(1610)
명나라
스페인인, 광동에 도착(1575)
포르투갈인 광동무역 허용(1578~1640)
선교사 마테오 리치, 마카오에 상륙(1582)
[만력회전] 완성(1587)
마테오 리치, 남경 도착(1587)
이시진 [본초강목](1590)
조선

선조 (1567∼1608)
율곡 이이, 10만 양병설 건의(1583)
종계변무 문제 해결(1588)
정철 [사미인곡], [속미인곡] 창작(1588)
통신사 황윤길·김성일, 일본에 감(1590)
서산대사(1520~1604)

1550~1620
독일 르네상스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 예배당(1512~15)
G.로빈

뷔르츠부르크의 대학교회(1583~91)
프리드리히 주스트리스

뮌헨의 성 미카엘(1583~97)
쾰른 시청사(16C)
야콥 볼프

뉘른베르크의 펠러 하우스(1602~1607)
J. 하인츠

아우크스부르크 병기고(1602~1607)
엘리아스 홀

아우크스부르크 시청사(1615~1620)
신성로마제국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루터 [95개조의 반박문] 발표(1517)
루터와 에크의 라이프치히 토론(1518)
종교개혁, 스위스로 전파(1518)
스페인의 카를로스,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함(칼 5세, 1519~1556)
교황 레오 10세, 루터 파문(1519)
루터, 파문 문서 소각(1520)
보름스 국회 - 신교 금지, 루터 추방(1521)
아우크스부르크 국회 -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낭독(1530)
신교 제후, 쉬말칼덴 동맹 결성(1531)
루터, 독일어 성서 번역 완성(1534)
브란덴부르크, 신교 도입(1539)
신구교도간의 쉬말칼덴 전쟁(1546~-1547)
아우크스부르크 국회, 루터파 자유 공인(1555)
페르디난트 1세(1556~1564)
합스부르크가, 독일계와 스페인계로 양분(1556)
막시밀리안 2세, 신앙의 자유 포고(1572)
반종교개혁 운동과 예수회 전도 활동(1576)
신교도, 신교 연합 형성(1608)
구교연맹 성립(1609)
천문학자 케플러 - 천체의 3법칙(1609)
조선 - 임진왜란(1592-1598) 발발
한산대첩(1592)
명, 대일본 원군 파견(1592)
권율, 행주산성에서 대승(1593)
진주성대첩 - 1차(1592), 2차(1593)
이순신, 명량대첩(1597)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1598)
이순신, 노량해전에서 전사(1598)
왜군 철수(1598)
명군 철수(1600)
인도 무굴제국

무굴제국 악바르 황제(1542~1605) 무굴체제 확립
영국, 동인도회사 설립(1600)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설립(1602)
프랑스, 동인도회사 설립(1604)
타지마할 완성(1648)

1600~1650
영국 르네상스
이니고존스(1573-1652)

그리니치 궁전(1616년경~1635)
런던의 연회당(1619~1622)
런던의 성 바오로 교회(1631-37/1795년 화재 후 1798년 재건축)
기타 영국 르네상스

토머스 소프- 노섬턴셔의 커비 홀(1570~75)
노섬턴셔의 버글리 하우스(1577~87)
영국

에드워드6세(1547-1553)
캔터베리 대주교 크랜머(1489-1556)
신교도 섭정(1547)
42개조 신앙조목 공포(1551), 서머셋공 처형(1551)
엘리자베스 1세 시대 (1558-1603)

런던 증권 거래소 설치(1566)
엘리자베스, 스코틀랜드 메리 처형(1587)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1588)
런던의 한자기지 폐쇄- 한자동맹 종료(1598)
동인도회사 설립(1600)
엘리자베스 여왕 사망(1603)
제임스 1세 (1603-1625, 스튜어트가) 재위
셰익스피어 [햄릿] 발표(1603)
인클로저 운동 농민반란 - 청교도 미국 이주(1607)
미국 버지니아에 최초 식민지 제임스타운 건설(1607)
의회, 권리청원 제출 - 찰스 1세 승인(1628)
찰스 1세, 의회 해산(1629-1640)
스코틀랜드 반란(1640)
찰스 1세, 의회와 정면대립(1642)
청교도 혁명(1642-1651)

의회파와 왕당파 사이 영국내전(1642)
올리버 크롬웰 의회군 지휘(1642)
크롬웰, 왕당파 격파(1644)
제2차 내전(1648) - 찰스 1세 탈주
찰스 1세 처형(1649)
공화정 시작(1649-1658)
항해조례 공표(1651, 네덜란드의 통상 위협)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저술(1651)
제1차 네덜란드-영국전쟁(1652-1654)
크롬웰, 잔여회의 해산 - 종신임기 호민관(1653)
명나라
마테오 리치, 북경 도착(1600)
프랑스 선교사 톨리고 도착(1610)
동림·비동림 당쟁 격화(1611)
산동 백련교도의 난(1622)
네덜란드 함대, 마카오 공격(1622)
후금군, 영원 포위(1626)
조선
허균 [홍길동전](1607)
광해군(1608~1623)
허준 [동의보감] 25권 찬진(1610)
창덕궁 중수(1615)
일본으로부터 담배 전래(1616)
명, 후금 대비 군사 요청 - 1만명 파견(1618~1619)
인조반정(1623)
이괄의 난(1624),
남한산성 건설(1626)
정묘호란 - 후금의 침입(1627)
후금과 화약(1627)
정두원, 명에서 서양문물 유입(1631)
병자호란(1636)
소현세자, 서양문물 가지고 귀국(1645)


왕, 황제는 생몰년도가 아닌 재위년도로 표시했다.
건물연도는 착공~완공년도를 표시했으며, 연도 하나만 있는 경우는 착공연도 미상으로 완공연도만 표시했다.
고유명사는 문교부 고시 제 85-11호(1986) 외래어 표기법과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2002)를 따랐다.
언어권별 표기는 현재의 국경선이 아닌 역사 문화권(로마네스크~고딕 시기)을 기준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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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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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뉴마 (syki****) 2011.06.02 17:47 답글답글 취소 신고 담아가용~
선인장 (yosu****) 2011.05.23 10:43 답글답글 취소 신고 감사히 담아가요~
소덕소덕 (hymo****) 2011.05.07 13:43 답글답글 취소 신고 건물만 서양이 우월하겠냐 ㅋㅋㅋ
아이유가있는이유 (atj4****) 2011.05.05 23:52 답글답글 취소 신고 오오 건축학과가는게 제 꿈인데 자주 임석재 교수님 글 읽어봐야 겠어요 !
하늘낙서 (2204****) 2011.05.05 22:41 답글답글 취소 신고 4군 폐지가 뭔가요? 사병폐지와 관련이 있나요?
Marietta (shy_****) 2011.05.05 09:27 답글답글 취소 신고 첫줄 보자마자 임석재 교수님 글이라는걸 느낄 수 있네요 ^^; 조금 더 건축 기본 용어를 설명해주시면 더 이해하기 좋을거 같아요 ^^
굿 샬롯 (mrbe****) 2011.05.05 06:06 답글답글 취소 신고 서양의 건축물과 동양의 건축물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서양 나름대로의 매력과 동양 나름대로의 매력이 존재하니까요. 서양이 규칙성을 강조한다면 동양은 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으니 개인 취향이겠죠?
봉구 (armi****) 2011.05.04 23:12 답글답글 취소 신고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미즈노미키 (alle****) 2011.05.04 23:05 답글답글 취소 신고 열등감의발로 라고 보여질뿐...
별이 (ckct****) 2011.05.04 17:56 답글답글 취소 신고 따위는 아닌것 같은디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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