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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속의 집 서현의 서재

2014.05.13 08:28

더로스 조회 수:944

간략설명  
작품분류 한옥 
전화번호 -- 
주소  
시공기간  
골조  
20140513_082714.png제 서재를 표현하기 위해 찾은 말은 '집 속의 집'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접하는 건물 중에서 제일 복잡한 기능을 가지고 있고 잡다한 기능을 수행하는 게 집이거든요. 사무실이라고 하면 그냥 일만 하면 되고 식당에서 밥만 먹으면 되는데 집은 여러 가지 잡다한 기능을 수행해야 되는 공간이에요. 그중에서 서재가 또 그 잡다한 기능을 수행하더라고요. 서재에는 책도 물론 있지만 거기서 친구도 만나고 가끔 과일도 깎아 먹고 졸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하다 보니 집 안에서 가장 집다운 공간이 서재가 아닌가 싶어요."

  • 서현    ㅣ   건축가
    소속
    한양대학교 교수
    학력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저서
    <빨간 도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배흘림기둥의 고백>, <건축을 묻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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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의 이야기

나의 서재는 앞선 정렬

제가 절대로 손이 안 가는 책은 대개 경영서들, 혹은 자기계발서들. 이런 책들은 제가 사려는 생각을 잘 안 해요. 그리고 제일 많은 종류를 따져보니까 미시사. 미시문화사예요. 역사, 통사 책들은 한때는 좀 관심 있게 샀었는데 요새는 역사 중에 한 부분에 집중해서 옷이나 기계 이런 것들을 파고드는 책에 관심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마 제일 취향이 맞는 사람이 헨리 페트로스키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뭐 연필, 포크, 지퍼 이런 거 가지고서는 책 한 권씩 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제일 많은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제 서재의 특징이 뭔가 잠깐 생각을 해보니 내용보다 책을 꽂는 방식에서 재밌는 것 같아요. 설명하자면 책장에다 책을 꽂을 때 책의 전면이 책꽂이 앞에 오게 전부 다 앞선 정렬을 해놓아요.
친구들 집에 가서 보면 책이 뒤로 들어가 있고 앞에 공간이 좀 있으면 거기에 기념품들도 놓고 그러는데 저는 이상하게 그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앞선 정렬해서 꽂는다는 게 아마 제 서재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그게 그 공간을 정리돼 보이게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나름대로 긴장감이 재밌어요. 책들이 딱 도열해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책들이 뭔가 군기가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번 해보세요. 굉장히 달라요.

건축가 서현의 서재 이미지 1

가감 없이 쓰는 서평 블로그

제가 블로그에 서평을 꾸준히 올리는데요, 서평도 아니고 그냥 독후감 정도겠지만, 제가 사는 책 중에 영어책과 전공 관련 건축책들 이외의 책들을 써서 올리고 있어요. 이 블로그는 처음엔 저희 대학원생들이 보기를 기대하고 '나는 이런 책 읽었으니까 너희도 관심 있으면 이런 책 읽어보면 어떻겠냐.'라는 생각에서 올리기 시작했고 대체로 신간 서적들이죠. 제가 신간 서적을 접하는 제일 중요한 소스는 일간지 서평인데, 대체로 서너 줄 서평을 읽으면 책의 내공이 보이잖아요. 그거 구입해서 읽어본 후 때로는 혹평, 때로는 호평? 구분 없이 해요.
책을 구입한 사람은 공짜로 얻은 게 아니고 책을 구입한 거잖아요. 그러면 저자에게, 혹은 출판사에게 지급한 인세, 혹은 책값만큼 비판할 자격을 갖는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가감 없이 '이거는 번역이 왜 이래', '출판사는 표지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 뭐 이런 내용을 그냥 쓰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그런 거 그렇게 막 써도 돼?"라고 묻는데 저는 '제가 지불한 책값만큼만 쓴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얻어서 쓴 책에는 제가 혹평을 하지 않습니다. (웃음) 나름 일관성 있죠.

책은 행복한 동반자

제가 책을 써보니까 그 오랜 시간 동안, 말하자면 심혈을 기울여서 쓰는데 그런 책들이 주위에 아주 많잖아요, 널려있잖아요. 그러니까 나한테 얘기를 할 사람은 굉장히 많은데 그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고, 문자를 통해 저한테 얘기를 하잖아요? 저한테는 굉장히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무림의 고수들이 만 오천 원 내가 내면 기꺼이 나한테 와서 막 떠들어준다. 어우, 그럼 축복받은 인생인데. 책을 읽을 만한 시간도 있고, 또 책값 지불할 만한 경제적 여유도 그나마 있고. 행복한 동반자? (웃음)

건축이 우리 인생을 재조직한다

제가 쓴 책 중에 <건축을 묻다>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결론이 '건축이 무엇인가'예요. 건축의 가치가 조금씩 변해서 오늘을 이루었는데, 지금 2014년에 건축가들이 발견한 건축의 가치는 사용자들에게,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된다.'라고 그들의 인생을 재조직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그 도구가 바로 공간의 조직이죠. 그게 건축의 가치, 건축의 의미, 건축의 색깔, 이런 것 같아요.

좋은 도시의 조건은
건축가 서현의 서재 이미지 2

좋은 건축은 사실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얘기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의외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인 도시는 훨씬 더 쉽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결국은 모든 도시는 어떤 사회를 담고 있고, 그 사회는 그 사회가 조직된 방식을 통해서 도시를 규정하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장 좋은 도시는 가장 공정한 사회가 만드는 도시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 공정한 사회가 만드는 도시의 모습이, 공정한 사회의 모습이 공정한 모습으로 곧 도시에 변환돼서 나타나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이 시간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1번지, 강남에 가서 보시면 그 도로 옆 인도 위에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주차해 있어요. 그러면 그 도시 위에서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보다 우대받는 사회죠. 그리고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우대받는 사회고요. 그러면 이 사회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잖아요. 그런 사회가 만든 도시가 전혀 아름다울 수가 없죠. 그 옆에 무슨 수십억 원을 들여 만든 멋진 건물이 있다 한들 바로 그 전면이 불법주차로 인해서 깨진 보도블록이 즐비하다면 그 도시가 아름다울 수가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디 멋있는 도시 구경 간다고 하면 OECD 국가들의 도시들인데 왜 그 사회, 그 도시들이 혹은, 국가들이 OECD 국가와 도시가 됐냐 하면 그 사회가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거든요. 결국은 아름다운 도시, 좋은 도시가 무엇이냐, 되게 간단해요. 공정한 사회가 만드는 도시. 그게 아름다운 도시예요.

지금 이 시간에 바로 맨해튼에 비행기 타고 가서 맨해튼 전역을 다 뒤져보면 보도에, 거긴 다 콘크리트인데 보도 위에 자동차가 올라가 있는 케이스는 단 한 대도 찾기 어려울 거예요. 근데 한국은 지금 다 자동차가 점거하고 있죠. 모든 사람이 꿈꾸는 꿈의 아름다운 도시.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게 샹젤리제잖아요. 샹젤리제 가서 보면 보행자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거기서 커피 마시고 친구들 만나고 영화보고 그런 도시거든요? 공정한 도시죠. 그게.

도시가 달라지면 우리 삶도
건축가 서현의 서재 이미지 3

엄청나게 달라질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있냐면 지금까지 대개의 시장이, 다는 물론 아니지만,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서 행정을 하지 않고 이 시에 오는 외국인들을 위해서, 정확히 표현을 하면 관광객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부여받은 행정 관할을 남용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이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될 권리, 갖고 있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그랬는데요.

예를 들어서 저기 구석에 갔더니 동네가 보기가 안 좋다. 몽땅 다 재개발해서 새로 만들자. 2만 평 딱 잘라서 여기에 도시 만들자. 그렇게 새로 사업을 시작하면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제일 이득권을 갖는 집단이 대형 은행이에요. 그다음이 건설회사들. 그리고 제일 피해를 많이 보고 도시에서 쫓겨나는 자들이 누구냐면 세입자들. 그러면 단지 경제적인 기회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도시 내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건 공정한 사회라고 보기 어렵죠. 그러면 그러한 사업이 과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를 하느냐.
결국, 그래서 30층짜리 아파트를 다 지었다 해서 그 안에서 제일 돈 많이 번 사람은 은행이고, 건설회사고 거기에 든 세입자들이 쫓겨났다면 그 도시가 아름답다고 느껴지시겠어요? 저는 그거 동의할 수 없어요.

나에게 도시를 고치라고 한다면

안 고치는 것. 도시는 인체랑 거의 흡사해요. 그래서 우리 인체를 보고 어디가 고장 난 것 같다 했을 때 외과 수술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여기를 툭 잘라서 여기다 붙인다거나 하는 건 안 되잖아요. 도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좋은 처방은 한방에서 하듯이 필요한 혈도에 침을 놔서 결국은 외상이 없이 내부의 순환 조직을 바꿔서 원래의 모습을 갖게 하는 것. 이게 제일 좋은 거거든요.

문제가 드러나는 곳들은 몇 군데 있지만 그걸 뚝 잘라서 여기 있는 거 여기다 옮기고, 여기 있는 거 여기다 옮기고. 재개발하고 여기는 무슨 구역으로 만들고 하는 건 외과 수술이에요. 도시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면 결국은 크게 흉터 나고 과거의 불행한 흔적을 유지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는 도시 잘못이 있다 하면 외과수술을 집중적으로 해왔어요. 이제 그런 거 그만해야죠. 그냥 침을 놓는 수준으로 혈도를 찾아서 바늘로 안 보이게 짚어줬더니 그 부분이 쫙 펴져서 원상 복귀됐더라, 그런 모습을 기대해야지 "도시가 잘못됐다."고 말할 건 아녜요. 도시가 잘못돼 있는 곳은 없어요. 그 사회가 불안정하거나 불공정할 따름이지.

좋은 도시에 살기 위해

화낼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아까 말씀드린 강남에 가서 인도 위에 자동차들이 있는데 그냥 스윽 지나가고, 이런 거는 화내지 않는 거잖아요. 불법주차 단속권을 기초자치단체에서 가지고 있어요. 그것 누가 고칠 수 있냐면 결국은 시민들이 고칠 수밖에 없어요. 계속 전화하고 단속하라고 떠들고 하는 것밖에 없는데. 결국,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집합적으로 모여서 계속 그래야지 침이 딱 놓이면서 '아, 세상이 이런 모습이구나.'하고 점점 바뀔 수가 있겠죠.

근데 대개 보면 '어? 그게 문제였어요?'라고 생각하게 돼요. 심지어는 경찰서 앞에도 순찰차들이 인도에 올라와 있는 그런 것들이 많아요. 그럴 때 경찰서에 들어가서 "이거 불법주차입니다." 하면 경찰관들도 "어? 그런 거에요?"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 얘기는 시민들도 너무 이 상황이 익숙하다 보니까 받아들이는 거죠.
우리는 밀림에서 태어났고 정글에서 생활해왔고. 그렇게 무법천지에서 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우면 받아들이잖아요. '그게 아니다.'라고 깨달아야 된다는 걸 화를 내야 한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건축가 서현의 서재 이미지 4

(지식인의 서재 '서현' 편은 한양대학교 과학기술관 연구실에서 촬영했습니다.)